대통령의 말하기 | 윤태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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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과 함께 살아온 10년
500여 권의 휴대용 포켓수첩, 100권의 업무노트, 그리고 1,400여 개의 한글 파일,
‘대통령의 말하기’로 다시 태어나다!
-대한민국 최고의 연설가 노무현 대통령이 전하는 궁극의 말하기 원칙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를 통해 정리했다. 머릿속 생각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팩트(fact)는 교정되었고 구성은 정교해졌다. 비유가 풍부해졌고 논리도 진화했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참모들은 동일한 내용의 이야기가 수많은 버전으로 탄생하며 진화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 핵심에 ‘윤태영’이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대통령의 복심’, ‘대통령의 입’, ‘노무현의 필사’ 등 권력의 핵심으로 불렸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정도의 세월을 노무현의 말과 함께 살았다. 특히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대통령인 그의 말을 받아 적는 것이 직업이었다. 조찬과 오전회의, 오찬과 오후회의, 그리고 만찬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나날이 기록의 연속이었다. 대변인 시절까지 포함하여 노무현의 말을 기록했던 10년, 업무노트 100여 권, 작은 포켓수첩 500여 권, 그리고 한글파일 1,400여 개가 생성되었다. 그것이 모두 ‘대통령 노무현의 말’이었다.

《대통령의 말하기》(위즈덤하우스 刊)는 그 방대한 자료에서 집약한 노무현 대통령의 말하기 원칙과 노하우를 담고 있다. 저자 윤태영은 이 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말했고, 또 말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고심을 거듭했는지를 실감 나는 예화와 함께 보여준다. 총과 칼이 아닌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노무현 대통령의 말하기 노하우를 23가지 원칙으로 정리한 저자는, 대화의 목적∙대상∙장소∙상황에 맞는 대화법뿐만 아니라 말재주 없어도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소통하는 말하기의 진수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도와준다. 말을 잘하려는 사람, 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사람, 말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 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주장의 옳고 그름이나 그 객관적 타당성을 떠나서 그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원칙과 소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확인되는 포인트가 하나 있다. 말하기의 기본은 역시 분명한 소신이라는 사실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한데 들을수록 입장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사람을 가끔 접한다. 소신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장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말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나을 수도 있다. 2004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이른바 ‘식사정치’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기다렸다는 듯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본 질문에 답변 드리기 전에 ‘식사정치’부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은 것 아닙니까?”---17쪽

‘아니오’를 말하는 사람이었던 그는 자신의 의견에 대한 ‘아니오’도 충분히 들어줄 만큼 열린 정치인이었다. 무엇보다 참모들의 격의 없는 의견을 듣기 위해 그가 먼저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마주앉은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긴장을 풀어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 때로는 ‘싱거운’ 농담이나 유머로 대화를 시작하기도 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모들과 토론을 벌였다. 대화와 토론은 자신의 생각 속에 있을 수도 있는 잘못된 정보나 판단의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검증 장치이기도 했다. ‘아니오’를 말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었다면 ‘아니오’를 듣는 것은 소통의 완성인 셈이었다.---43~44쪽

‘선택과 집중’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본인을 위해서도 청중을 위해서도 그렇다. 기꺼이 버리는 사람이 좋은 작가가 되고 뛰어난 연사가 된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특히 그렇다. 다른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 모두를 인내하며 들어줄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속도가 경쟁력인 시대이다. 모두가 바쁘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주제는 최대한 압축할 필요가 있다. 봉하마을의 사저를 찾아온 방문객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던 퇴임 대통령 노무현. 그는 방문객 대상의 인사말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날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반추하면서 갈고 또 다듬었다. 형식은 인사말이었지만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던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용은 밀도를 지녔고 구성은 체계를 갖추었다.---116쪽

동일한 문구가 반복되면 듣는 이가 지루함을 느낄 것으로 우려하지만 오히려 정반대다. 사람들의 귀는 리듬과 운율에 끌리기 마련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문구의 반복을 통해 리듬감을 줄 수 있을까? 2006년 4월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한일관계에 대한 특별담화문’을 보자.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되었던 우리 땅입니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편입하고 점령했던 땅입니다.”
각 문장의 끝에서 ‘땅입니다’가 네 차례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같은 단어가 반복되고 있지만 하나하나의 문장마다 강한 힘이 느껴진다. 이처럼 한국어에서는 마지막 서술어 부분을 통일시키는 기법도 효과적이다.---145쪽

듣는 이와의 호흡은 공감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나아가 현장의 상황에 반응할 수 있다면 최고의 화자가 될 수 있다. 주고받는 대화가 당장은 어색하다면, 최소한 현장의 특별한 상황이나 그 지역과의 인연 등에 대한 언급으로 듣는 이와의 거리감을 좁힐 필요가 있다. 재임 중의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 단체로 손님을 초청한 경우,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면 반드시 일문일답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외국 순방 때 현지 동포들을 만나도 꼭 일문일답을 했다. 돌발성 질문도 있었고, 대답하기 난처한 물음도 있었지만 그는 그 시간을 피하지 않았다. 그 모두가 소통을 위한 노력이었다. 2004년 말에는 남미 순방길에 오르면서 미국 LA에서 1박한 적이 있었다. 당시 동포간담회의 일문일답 과정에서 어떤 교민이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그는 남미 순방을 마친 후, 곧바로 자이툰 방문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238쪽

나의 문체는 담백한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경선캠프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장마다 화려한 수사나 은유를 담아내는 편이었다. ‘태양’이나 ‘대지’도 자주 등장하고, ‘역사의 물줄기’, ‘활화산’, ‘불꽃’, 나아가 ‘고뇌 어린 결단’, ‘위대한 국민’ 같은 표현들도 즐겨 썼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노무현 후보는 나의 이러한 문체를 수용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두 건의 외부 기고문을 작성한 후 결재를 맡기 위해 그의 방을 찾았을 때였다. 해수부장관이었던 그는 장관직을 수행하느라 경선후보 캠프에는 자주 들르지 못하고 있었다. 모처럼 캠프에 들렀을 때 결재를 받으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 원고의 첫머리를 보고 나서 그는 바로 종이를 덮었다. 내용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뿐더러 글 또한 자신의 문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다시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나의 글은 서서히 수사가 없는 문체로 변했다.---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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